동양의문화와문화재/옛절을거닐며

만암스님의 뜻이 서린 백양사 팔층석탑에서

와썹맨눈썹맨 2021. 1. 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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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대웅전

 나그네가 속세의 번거로움을 떠나 산사를 찾는 것은 자연을 닮아 보고 싶어서 일 것이다.

 산에 사는 스님들뿐만 아니라, 도시의 화려함을 모르는 소박한 농부에게서, 가난하지만 선량하고 넉넉한 이웃들에게서, 물소리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옷이 두터워질수록 산은 더욱 벌거벗는다. 백암산의 숲들도 훌훌 낙엽을 떨치고 호젓이 겨울을 나고 있다. 겨울산의 적막감을 깨는 것은 재잘거리는 산새들의 모든 소리이다. 그 소리는 사람을 맑게 해 주곤 한다.

지난 가을의 열매를 그대로 간직한 붉은 홍시들이 매달려 있고 숲속의 비자나무들이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어서 더욱 겨울의 기운이 느껴진다.

 

백양사 쌍계루

 쌍계루 앞의 맑은 물을 건너 대웅전에 참배한 뒤에 꼭 들러볼 곳이 대웅전 뒤의 팔층석탑이다. 탑의 층수는 삼층이나 오층 혹은 칠층 등의 홀수 층이고, 탑의 모서리는 언제나 사각이나 팔각의 짝수가 정형인데 백양사의 탑은 한국의 옛 절에서 보기 힘든 유일한 팔층탑이다. 여기에는 구한말 백양사를 부흥시킨 만암 스님의 숨은 뜻이 서려 있다.

 

백양사 팔층석탑 

 조계종의 초대 종정을 역임하시고 불교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신 스님의 신앙은 부처님의 초기 법문인 팔정도를 일상에서 손수 실천하고 교화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여덟 가지 바른 가르침의 바름이란 무엇인가. 그 가장 우선하는 바름 바른 견해라고 한다. 인생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것 그 고통의 원인은 탐욕·분노·어리석음의 삼독이라고 한다. 만약에 세상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있다면 이는 결코 바른 견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암 스님의 높은 법력은 이뭣고의 화두이기도 하거니와 바로 팔정도를 실천의 나침판 삼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었음을 팔층탑에서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언어, 바른 행위, 바른 정진, 바른 생각, 바른 삼매··· 탑의 주위에 다시 돌에 새긴 글들을 새삼스럽게 읽어 보고 또 읽어 보았다. 만암의 뜻을 이은 서옹스님이 참사람 결사의 의미도 팔정도의 바름을 실천하는 일과 둘이 아닐지 모르겠다.

 자동차를 타고 산을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겨울의 스산한 추위를 느낄 수도 없으려니와 겨울 산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지도 못할 것이다.

 산사에서는 일 없는 사람처럼 게으름을 피우면 천천히 걸어보자. 자연의 소리에 젖으면서 바쁜 마음은 어느새 부처님을 닮아 갈 것이다.

 

만안 종헌스님 부도

이희재 명상기행집 옛절을 거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