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원효사 개산조당에서
무등산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원효사 가는 길은 광주에서 가장 운치 있는 길일 것이다. 산장의 주차장에서부터 원효사로 가는 산길에는 가을 낙엽이 쌓여있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보는 무등산의 정경은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원효사로 들어서는 대나무 숲 사이의 돌계단을 따라올라, 대웅전에 참배하고 다시 무등의 정상을 마주하면 그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 더욱 돋보인다.
대웅전 터에서는 근래 백제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간의 여러 유물들이 발굴되어서 유서 깊은 고찰임이 드러났다. 특히 광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은 그 고아한 미소가 일품이다.
이 곳 부도전에는 원효국사 부도탑이 조선조의 회운당 부도와 함께 나란히 있다. 신라시대의 스님이 조선조에 와서 새겨진 의미는 무엇일까?
최근에는 원효대사의 진영을 모신 개산조당이 세워졌다. 그 건물의 벽화에는 원효의 생애가 열 한 개의 장면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이채롭다. 일찍이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땅의 풍토에 알맞게 해석한 고승, 그리고 당시의 유행처럼 중국의 학승들이 그의 저서를 참고할 정도로 높은 학문을 이루었던 스님, 원효 그 분의 진면목은 높은 학문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스스럼없이 서민 속에 들어가 함께 부대낀 보살행이야 말로 더욱 그를 빛나게 한 것이리라.
그 큰스님이 무등산을 사랑하고 원효사를 창건한 개산조라는 사실은 옛 기록에 있지만, 터를 세우고 닦은 역대의 조사스님들이 원효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한 것이리라. 대웅전 터에서 발굴된 불상들도 언제 어느 때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통일신라 말과 고려 초기에 천불전에 모셔진 부처님 모습이 아닌가 하고 짐작할 뿐이라고 한다. 이렇게 신비 속에 묻혀 있는 그 부처님의 미소가 더욱 원효사를 아름답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원효사는 광주의 도심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고요한 절이다. 우리시대가 점차 잃어 가고 있는 여유와 한가로움을 여기에 오면 찾을 수 있으리라. 광주의 시조시인 경철은 『무등산가』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법력 높던 스님들
천년노송 기대서니
푸르름 가꾼 절조
계곡 따라 맑은 물은 팔경을 비춰주듯
덕업이
날로 새롭도록
큰스님 머물던 자리
봄에는 봄의 소리
여름에는 여름 숨결
가을도 겨울에도 그다운 빛과 의지
밝은 달
떠오른 밤
성사 얼굴 돋아난다.
『무등산가』 「무등산 원효사」 경철. 1993. 한림
경제 한파 속에서 산장을 찾는 인적도 드문 날, 길을 쓸고 있는 스님에게 아련한 향수를 느낀다. 우람한 무등의 영봉과 그 곳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원효사에서 나그네는 민중과 애환을 함께 했던 원효스님의 넉넉함을 그려본다.
이희재 명상기행집 옛절을 거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