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산 관음사
남도의 길은 유난히 좁고 가파른 산길이 많다. 곡성의 옥과도 예로부터 그런 깊고 한적한 고을로 알려진 곳이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을씨년스런 비를 맞으며, 지금은 곡성군 오산면에 속한 성덕산 관음사를 찾았다. 비안개에 묻혀서 일까. 생각보다는 훨씬 깊고 기품 있는 산이다.
이 산은 백제 관음신앙과 관련된 이름을 가졌다. 백제의 자취가 거의 없는 남도에 분명한 사적기를 가지고 있으려니와 산과 마을의 이름까지도 성덕이라고 하니 놀랍다.
성덕이라는 처녀가 이곳 관음사를 창건한 연대는 백제 분서왕 때인 4세기 경이다. 아직은 중국에서조차도 불교신앙이 뿌리를 내리기 전의 일이다. 한역대장경이 천축과 서역스님들에 의해 이루어 질 때이며, 어떤 종파도 나누어지지 않았던 그런 시절이다.
성덕처녀가 낙안포구에서 이곳까지 모셔온 관음상은 중국 동진시대의 것으로 짐작된다. 이 불상을 보낸 이는 동진의 황후 홍장아리고 한다. 그녀는 빈천한 백제 땅에서 눈 먼 홀아버지를 모시다가 동진의 관리에게 황후로서 간택되어 고향을 떠났다. 물론 그 대가로 절에 큰 시주를 하여 아버지는 눈을 뜨게 되고 그녀 또한 행복한 여생을 보낸다는 설화이다.
이러한 관음사의 창건설화는 민중 속에 떠돌아다니다가 조선조에 이르러서 판소리 심청전으로 각색된다. 다만 심청전은 익살스럽게 변질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윤회와 인과응보 등 부처님의 가르침이 들어있다.
이런 성덕산 관음사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전을 향하는데, 멀리서부터 들리는 예불소리는 산자락의 깊이만큼이나 길고 그윽하다. 성덕의 관세음보살님은 아주 아담한 모습으로 나그네를 반겼다. 괴로움으로부터 중생을 구하시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앞에 손을 모은다.
보살님,
누리 고즈넉이
잠든 밤
향을 돋우어
영접하옵니다.
제일로 아파하는 마음에
제일로 기원하는 마음에
헌신하시는 보살님···
바늘 구멍만큼도
빛이 안 뵈는 칡흙 어둠의
울음 우는 여인을
함께 눈물 지우시는
대자재비 관세음
『시와 불교의 만남 1』 허영자, ‘관세음보살님’ 1989, 동국역경원.
어느 여류시인이 노래한 ‘관세음보살님’을 함께 불러 본다.
일찍이 나라의 보물로 지정되었던 이곳의 원통전과 금동관세음보살상은 6·25사변으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백성들의 생명이 풀 이슬처럼 허망했던 시절에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던 그런 시절의 슬픔이 남도의 사찰에는 상처처럼 남아 있다. 그러나 성덕산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여전히 아름답고, 지금의 원통전에 모셔진 백제 관세음보살님의 미소도 변함이 없다.
이희재 명상기행집 옛절을 거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