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문화와문화재/옛절을거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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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사의 극락전동양의문화와문화재/옛절을거닐며 2021. 4. 17. 13:37
무위사의 극락전 매화꽃이 피었다. 이 날을 기다렸다는 듯, 함초롬이 머금은 꽃망울 안에서 하얀 매화꽃이 피었다. 언제나의 봄처럼 봄시내는 촉촉하다. 촉촉한 땅에 희망처럼 새싹이 돋고, 온갖 꽃들이 그 자태를 뽐내고자 개화를 기다리는 봄이 왔다. 월출산의 남쪽 성전면에는 화사한 터에 자리잡은 무위사가 있다. 월출의 거센 기상이 숨을 죽이고 잔잔해진 터에 자리한 무위사에는 극락전이 있다. 조선 성종대에 이루어졌다는 극락전은 긴 세월의 무게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균형잡히고 산뜻한 자태로 나그네를 반긴다. 이곳에 모셔진 부처님은 아미타불이다.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들의 영접 나온 모습이 그려진 벽화는 극락세계를 은은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세련된 기법으로 묘사한 이런 벽화는 흔히 찾을 수 없는 명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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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사 석장승 앞에서동양의문화와문화재/옛절을거닐며 2021. 3. 24. 22:05
불회사 석장승 앞에서 숲 향기 꽃 향기가 베인 불회사 길목은 소쩍새 우는 늦봄에야 그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다. 산의 색은 포근하고 산뜻하여 나그네를 감싸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숲에서는 자연의 모든 소리가 법문처럼 들린다. 소쩍새는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이 부럽지 않느냐는 듯이 깊은 산 속에서 운다. 들어주는 이 없어도, 찾아주는 이 없어도 언제나 제 모습대로 살아가는 자연은 또 다른 향기로운 법문이다. 불회사는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가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다. 하지만 백제의 유적은 찾을 길 없고, 고려말 조선초에 원진스님이 중창을 한 이야기가 남아있다. 스님은 험한 산중에서 호랑이를 만났는데 입 속에 뼈가 걸려 죽어 가는 호랑이였다고 한다. 스님의 자비심으로 목숨을 구한 호랑이가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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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사터에서동양의문화와문화재/옛절을거닐며 2021. 2. 23. 23:14
무등산 아래 있는 광주호는 광주광역시와 담양군의 경계다. 담양군 남면 학선리는 광주호의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개선사터는 담양군에 속하면서도 광주쪽에 자리 잡고 있다. 무등산 길을 따라 충효동 앞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학선리의 개선사 터가 나타난다. 사람이 사는 곳 같지 않게 아주 조용해서,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나지막한 산자락 사이, 그 논 가운데 개선사 터가 있고 거기에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이 있다. 무덤처럼 적막한 산 가운데서 천년 전의 바람이 분다.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천년의 바람」 박재상 어쩌면 초라하게 보이는 바람 부는 산골의 분위기와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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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무사전無私殿에서동양의문화와문화재/옛절을거닐며 2021. 2. 8. 06:31
겨울 산사에 부는 바람이 꽤 스산하다. 요란스런 여천 공단의 분위기는 흥국사의 앙상한 가지들로 우거진 길을 따라가면 금새 바꾸어진다. 영취산으로 둘러싸인 그 곳에는 이미 인적이 끊어지고 겨울바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흥국사의 역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로부터 시작하지만 남은 유적은 조선시대의 흔적들이다. 이순신 장군을 도운 의승병들의 자취를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남은 비석 등의 글에도 조선 특유의 유생들의 글투가 그대로 전해진다. 대웅전의 오른쪽에 여느 절과 같은 명부전이 있는데, 이곳은 무사전無私殿이라는 필자미상의 현판이 쓰여져 있어서 특이하다. 건물은 낡아 교체되었지만 앞면의 벽화는 매우 훌륭한 솜씨다. 발곡 하얀 얼굴의 인물이 피리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구름 위의 모습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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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의 빈 의자동양의문화와문화재/옛절을거닐며 2021. 2. 7. 17:37
초록빛 잎 새들이 가을을 향해 하나 둘 노랗게 물들어 변해 간다. 불일암을 둘러싼 산도 조금씩 가을 물을 들였다. 이 암자를 세운 법정스님은 강원도의 오두막으로 떠났고 상좌승만이 남아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불일암 앞뜰을 어느새 대숲이 들어서 더욱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벽에는 청산별곡이 예전처럼 붙어 있다. 살어이 살어리 랐다. 청산에 살어리 랐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 랐다. 그 아래 낮은 토방 위에 소박한 나무 의자가 덩그레 놓여있다. 어느 해던가 스님을 방문해 떡국을 대접받은 기억이 새롭다. 산사의 한적한 삶을, 황폐해 사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마르지 않은 샘물처럼 들려주던 ‘산방한담(山房閑談)’이 알려지면서, 스님은 찾아오는 불청객들로 인해 한가함을 빼앗기고 말았다. 불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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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 감로탑을 찾아동양의문화와문화재/옛절을거닐며 2021. 2. 4. 16:05
광주에서 화순을 거쳐 주암호로 가는 길은 산과 물이 어울려 푸근한 정취를 주는 길이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송광사가 나온다. 한국불교의 상징인 조계종의 명칭 그대로의 조계산은 마치 송광사를 위해 있는 것처럼 절을 감싸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절로 걸어가는 길은 세속의 냄새를 떨치고 부처님의 향기가 나는 길이다. 하늘을 가린 숲의 향기를 맡으며 일주문 앞에 다다르면 고색창연한 단청이 송광사의 연륜을 대변한다. 숲과 건물과 아기자기한 구름다리 등은 그저 마음을 조용하게 할 뿐이다. 행장을 부려놓고 일주문 들어서니 천문이 열리인 듯 별안간 황홀한데 물소리 인경소리가 천년 숨결이어라 「인암시조선」 불교를 묻는 이들에게 만연체의 사설은 지루하기만 하다. 그저 한 번쯤 절로 가는 길에서 호젓함을 맛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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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리의 백제여래상을 찾아서동양의문화와문화재/옛절을거닐며 2021. 1. 27. 20:46
봄의 풀잎들이 어느새 파릇해 지고 있다. 전라북도 정읍군 소성면 보화리의 백제여래상을 찾았다. 황토밭의 길목에 위치한 이 불상은 지나 가는 마을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남쪽하늘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이다. 절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언덕베기에 어떻게 이러한 불상이 서있게 되었는지 기록이 분명치 않다. 7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여래상은 아름다운 얼굴모습을 잃어버렸지만 남아 있는 윤곽을 통해 원만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짐작할 뿐이다. 불상에 새겨진 옷의 주름은 왼쪽어깨에 가사를 걸친 모습이며 손의 모습은 서산의 마애여래상과 같다. 정읍은 백제의 시가인 정읍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어두운 밤 먼 길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걱정하며 달이 환히 뜨기를 기원한 백제의 여인의 모습과 이 길목의 여래상의 모습에는 공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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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미륵전을 찾아서동양의문화와문화재/옛절을거닐며 2021. 1. 23. 23:24
모악산 금산사로 들어서면 맨 먼저 겨울 까치들이 나그네를 반긴다. 앙상해진 숲들은 생기를 잃었지만 산새들의 노래에서 이 산이 신선하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모악母岳이란 어머니 산이란 뜻으로 이 산에서 흐르는 물이 김제평야의 젖줄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산사는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김제평야처럼 그에 어울려 가람의 규모가 큰 곳이다. 미륵전의 3층 목조 건물은 높이에 있어서, 대적광전은 길이에 있어서 이 나라 사찰에서 으뜸이다. 이 곳의 미륵전에 들어가 미륵부처님 앞에 서면 또한 그 서른 다섯 척의 높이에 놀란다. 그 부처님은 앉아 계시지 않고 서 계신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때에 창건되었으니 익산의 미륵사지보다 앞서 이루어진 곳이다. 더구나 법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단순히 복을 받으려는 낮은 신앙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