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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리의 백제여래상을 찾아서동양의문화와문화재/옛절을거닐며 2021. 1. 27. 20:46728x90
봄의 풀잎들이 어느새 파릇해 지고 있다.
전라북도 정읍군 소성면 보화리의 백제여래상을 찾았다. 황토밭의 길목에 위치한 이 불상은 지나 가는 마을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남쪽하늘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이다. 절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언덕베기에 어떻게 이러한 불상이 서있게 되었는지 기록이 분명치 않다.
7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여래상은 아름다운 얼굴모습을 잃어버렸지만 남아 있는 윤곽을 통해 원만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짐작할 뿐이다. 불상에 새겨진 옷의 주름은 왼쪽어깨에 가사를 걸친 모습이며 손의 모습은 서산의 마애여래상과 같다.
정읍은 백제의 시가인 정읍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어두운 밤 먼 길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걱정하며 달이 환히 뜨기를 기원한 백제의 여인의 모습과 이 길목의 여래상의 모습에는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그런 애수가 서려 있다.
백제시대의 문화재로서 보호각으로 보존되고 있으면서도 마을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미륵님이나 ‘부부 부처’로 불리우는 이 백제불상에서는 토속적인 민속신앙의 모습도 엿 볼 수 있다. 깊은 산 그윽한 계곡에서 참배오는 중생들을 맞이하는 거룩하신 모습을 마다하고, 황량한 황토밭 마을 길목에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조차 하다.
게다가 아들을 발원하는 여인들에 의해 닳아 없어져 마멸된 눈, 본시 삼존불이었을 자리에 빈자리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조국의 쇠망을 지켜본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뇌를 닮은 것만 같다.
석존의 일과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이 탁발이었다. 이 탁발은 있는 집만 골라서 가는 것이 아니라 차례로 걸식하셨다고 전해진다. 이는 민중들의 삶과 ㅂ처님의 삶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중요한 일과였다. 세월이 가면서 부처님의 모습은 마치 왕과 같이 너무나 위대한 모습으로 새겨졌다. 중국에서 새긴 부처님은 그만큼 신격화된 모습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태안이나 서산 그리고 이곳 정읍에 새겨진 백제의 불상에는 그런 신비하고 신격화된 모습이 아닌, 인간적인 부처님의 무습을 볼 수 있다. 옆에 있는 협시보살상에 비해 조금 클 뿐이지 웅대한 모습이 아니다.
외롭고 고달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듯, 오늘도 백제여래상은 남쪽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을 뿐이다.
시골들판에 밝은 봄 햇살이 내리쬐는 날, 나그네도 환하고 잔잔했을 그 여래상의 따뜻하고 잔잔한 미소를 본다. 천 년 세월 돌에 새긴 그 미소는 사라졌을지라도 백제의 남은 자취가 봄바람처럼 훈훈하기만 하다.이희재 명상기행집 옛절을 거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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