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조선시대 건축
    한국의 美/한옥 2021. 1. 1. 14:05
    728x90
    조선시대의 건축 

     

    논산 명재고택

     

     조선시대는 양반이 사회를 주도했고 유교가 이들의 정신을 지배했다. 조선의 성리학은 중국과 구별되는 조선 고유한 학문 세계를 열었다. 조선시대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받았던 중국의 문화 영향에서 벗어나 우리의 고유한 건축을 만들어 낸 시기이기도 하다. 시대정신이었던 유교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조선시대의 건축을 이해하기 어렵다. 임진왜란 이후 민간에서는 불교가 다시 신앙으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고, 웅장한 사찰들이 재건되기 시작했다. 

     조선 시대의 건축은 인공적인 손길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이며, 창덕궁 후원은 자연미를 살린 대표적인 예이다. 사대부들은 산과 물이 어울리는 곳에 정자나 집을 지으면서 담을 낮게 하여 주변의 풍경과 어울리게 하였는데, 이러한 사대부의 취향은 담양 소쇄원 등의 정원과 도산 서원 등 여러 서원 건축에 잘 드러나 있다.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에서는 조선시대의 역사를 사회적지배세력의 변천과정으로 구분하였다. 

     

     

     

     ① 15세기, 양반사회의 성립 

     15세기 건축의 특징은 궁궐과 성곽, 관아 그리고 학교인 향교 등이 중심을 이루었다. 초기에는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라 집의 크기에 따라 일정한 차등을 두었으며, 건물 장식을 검소하게 꾸몄다. 

     한양으로 천도 후 경복궁, 창덕궁을 비롯한 궁궐을 세웠다. 현재 창경궁 명정전, 창덕궁 돈화문 등에서 당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창덕궁의 후원(금원, 복원, 비원)과 창경궁의 후원은 자연미를 살려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정원으로 유명하다. 

     조선 초기에는 주심포 양식과 다포 양식이 모두 이용되었으나 점차 다포 양식이 일반화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익공 양식이 등장하였다. 전남 강진의 무위사 극락적은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하면서 절제된 조선 특유의 건축미가 돋보인다. 

     

     

    나주향교

     

     ② 16세기~17세기 중반, 사림(士林) 세력의 성장

     사림의 진출과 함께 서원 건축이 활발해졌다. 야산과 하천을 끼고 있는 곳에 서원을 세워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였다. 가람 배치 양식을 본떠 강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재(齋)를 배치하였고, 건물을 검소하게 지었다. 안동의 도산서원과 경주의 옥산 서원 등이 유명하다. 

     지방 선비들은 주거지에 정원을 지었는데 조광조의 문하생이었던 양산보가 담양에 세운 소쇄원, 정철의 가사 문학의 산실어었던 식영정, 윤선도가 보길도에 세운 세연정 등이 있다. 특히 담양의 소쇄원은 자연미를 살린 것으로 유명하며, 절제된 정치와 선비의 풍류를 잘 나타내고 있다. 

     

     

    법주사 팔상전

     

     ③ 17세기~19세기, 광작(廣作) 농민과 도고(都賈)상인의 성장 

      임진왜란으로 조선 후기에 불교가 신앙의 자리를 어느 정도 차지하고 정치 · 경제적인 변화가 나타나면서 건축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양반과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부농, 상공업 계층이 지원하여 많은 사찰을 세웠고, 정치적 필요에서 대규모 건축물을 세우기도 하였다.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팔상전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규모가 큰 다층 건물로, 내부는 하나로 통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불교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양반 지주층의 경제적 성장을 반영하고 있다. 종묘, 창덕궁 돈화문, 창경국 명정전 등도 이 시기에 세워졌다. 

     18세기 들어 사회적으로 크게 부상한 부농과 상인이 지원하여 그들의 근거지에 장식성이 강한 사원을 많이 세웠다. 논산 쌍계사, 부안 개암사, 안성 석남사 같은 사원이 대표적이다. 

     실학사상이 대두되면서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집약시켜 만든 수원 화성은 이전의 성곽과는 달리 방어뿐만 아니라 공격을 겸한 성곽 시설로, 주위의 경치와 조화를 이루며 평상시의 생활과 경제적 터전까지 조화시킨 종합적인 도시 계획 아래 건설되었다.

     19세기에는 흥선 대원군이 국왕의 권위를 높일 목적으로 재건한 경복궁의 근정전과 경회루가 화려하고 장중하게 복원되었다. 

     

     

     

Designed by Tistory.